인성교육, 어디로 가야 하나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경제적으로 엄청난 급성장을 하였고, OECD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이 크게 상승하였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지고 있고, 인성수준, 부패지수(CPI), 공공성 수준 등에 대한 각종 통계자료와 사회적 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듯이, 우리 사회는 현재 도덕적 위기 국면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성숙한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윤리학자들은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여겨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도덕적 위기는 ‘사람(행위 주체)’와 ‘시스템(사회구조 및 제도)’의 문제가 함께 얽혀있는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도덕적 위기의 원인을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취약성에서만 찾게 되면 법과 제도, 사회적 자본 및 문화 풍토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그렇다고 그 원인을 사회구조와 제도의 부조리에서만 묻는다면 인간 개개인의 근원적 자유 혹은 자율과 도덕적 책임의 문제를 도외시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인성 차원’과 ‘사회구조 및 제도 차원’을 모두 개선해 나가야 하겠지만, 필자는 인성차원을 더 중시하면서 범국민적인 인성회복 운동과 학교 인성교육 활성화를 적극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1980년대에 미국 사회가 각종 부정적인 사회적 지표와 중대한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국가 차원의 인성 회복을 위해 1990년대 이후 인성교육운동(character education movement)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와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인성회복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학교 인성교육 강화를 교육 개혁의 중심에 놓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적 지향의 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성숙한 시민 사회와 이를 구성하는 바람직한 시민의 자질은 무엇이고, 이런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인성교육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실천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공동체의 이상과 목표 : 성숙한 시민 사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적 이상과 목표는 ‘물질적 혹은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면적·정신적 성숙’에 두어져야 하며, 정신의 자각과 변화를 위해서는 범국민적 차원의 결단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곳간이 차야 인심이 난다’는 옛말과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맹자의 통찰을 통해 보더라도, 경제적인 기초생활이 구비되지 못할 경우 도덕심과 후덕한 마음을 견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물질적 기반 마련이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토대로 간주되어야 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정신 및 문화 영역에서의 진보와 개선 없이 성숙한 단계로의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재산과 지위는 가졌지만 성품이 고약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국력(國力)은 있어도 국격(國格)이 없는 나라를 성숙한 사회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원로교육학자 정범모 교수의 말대로, “국격은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인간적 정서, 준법성, 도덕성의 수준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성숙한 시민 사회’의 의미를 규정한다면, ‘시민 사회’라는 말 앞에 붙은 ‘성숙한’이라는 수식어에는 교양, 예의, 품위, 인격, 정의와 배려, 소통과 협력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성숙한 시민 사회는 ‘품위․교양․예의가 있는 좋은 시민으로 구성된 사회’이며, ‘긍정적인 상호작용(공감, 소통, 배려, 나눔 등)과 정의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유대감과 신뢰 관계가 구축된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성숙한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구성원의 핵심 자질을 한마디로‘바람직한 인성’이라고 한다면, ‘바람직한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람직한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 즉 정직, 성실, 용서, 절제, 배려, 예의 등과 같이 (주로 자기 자신 및 타인과의 관계 차원에서 요구되는) ‘긍정적 성품과 도덕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자 규칙준수 및 준법, 인권존중, 공동선에 대한 관심 및 공적인 영역에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시민적 덕성을 지닌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검토하고, 또한 현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에 관한 반성을 통해 도덕적, 정신적, 영혼의 건강함과 성장을 추구한다. 이와 동시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현재의 공동체의 모습에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판단하고 이를 기꺼이 행하고자 한다.
 
인성의 창(窓)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자화상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성숙한 시민 사회인가? 인성지수 검사지를 활용해 측정한 우리 아이들의 인성 수준과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CPI) 등을 통해 볼 때, 우리 사회의 인성 수준은 위험한 상황이다. 인성수준에 관한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 및 청소년들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과 관련된 인성 수준, 그리고 준법 및 정직한 삶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나라 학생들은 인성의 여러 요인 중 정체성, 자기조절, 정직․용기 등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과 관련된 덕목과 역량이 다른 요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게 나타났다. 또한 초등에서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우리 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전체적으로 준법 및 정직한 삶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부패지수의 경우, 대한민국의 순위와 점수는 2010년 178개국 중 39위에서 2013년 177개국 중 46위로 하락했고, 부패인식지수는 55점으로 OECD 평균 68.6점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치권 및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하고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부패방지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외, 자살률의 증가, 높은 수준의 이혼 증가율과 낙태율, 남녀 임금 소득격차 등에 대한 수치는 생명경시 풍조, 자기통제 능력의 부족, 사회 양극화 및 양성 불평등 심화 등 우리 사회의 병폐와 미성숙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된다.
 
인성교육에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올바른 인성은 개인적, 공동체적인 삶의 유지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민 인성 수준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실정이며, 이와 같이 낮은 도덕적, 정신적, 의식적 수준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학교 및 군대 폭력, 정치권 및 공직사회의 도덕적 해이 현상, 생명경시 및 약자에 대한 부당행위 풍조, 분노 범죄 급증, 사회 양극화 및 양성 불평등 심화 등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숙한 시민 사회의 실현은 어떻게 가능한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숙한 시민 사회의 실현은 구성원 개개인의 인성과 사회 구조 및 제도 차원의 도덕성이 확보되어야만 가능하다. 윤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윤리 차원’과 ‘사회윤리 차원’으로 명명해 왔고, 이 두 차원의 통합을 통해 성숙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아왔다. 하지만 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회정의를 제대로 구현하느냐의 여부는 바로 그 제도를 운영하고 그 제도 아래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 구성원의 인성 수준에 달려 있기 때문에, 구성원 개개인의 인성 수준이 보다 근원적이고 핵심적인 차원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몇몇 위대한 사상가들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성 수준이 사회 전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해 왔다. 즉 높은 수준의 바른 인성은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Cicero)는 “시민들의 인성 속에 국가의 행복이 달려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또한 역사학자 토인비(Toynbee)는 “21개의 뛰어난 문명 중에 19개는 밖으로부터의 정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도덕적 쇠퇴로 인해 소멸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인성이 개인적·공동체적인 삶을 위해 중요하다는 기본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고 사회적으로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인성교육을 강조해야 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인성교육 관련 정책을 얼마나 제대로 마련하여 시행해 왔는가? 사실상 우리 사회에서 인성교육 정책 수립 및 강화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병폐들이 심각한 사건의 양상으로 표출되면서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를 목도하면서 실천위주의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5.31 교육개혁’(1995)을 시행하였고, 2011년 이후 학교폭력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잇달아 발생함에 따라 인성교육을 통해 이를 예방하려는 조치로‘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2012)이 마련되어 추진된 바 있다.
이와 같이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성교육이 성공하지 못한 주요한 이유는 입시와 성적 위주의 학교교육으로 인해, 인성교육을 형식적 혹은 공식적 차원에서만 강조하였을 뿐 실질적으로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인성교육 시책이 대증(對症)적 치료요법으로서 단시간 내 가시적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