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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세상

홍명희(아름다운 가게 이사장)

1호점 안국점 개점

2002년 10월, 아름다운가게가 안국동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아름다운가게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우려와 걱정으로 가득했다. 10년 전만 해도 ‘남이 쓰던 물건’을 ‘돈 주고 사서’ 쓴다는 개념이 매우 생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재활용’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중고 상점의 어둡고 낡은 이미지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접근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였다. 게다가 그 수익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고 하는데 기증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그 수익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만큼 발생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개점 첫날부터 이러한 평가는 크게 어긋났다. 개점시간 전부터 매장 앞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고, 1주일 판매를 목표로 준비했던 재고가 개점 몇 시간 만에 모두 동나 버린 것이다. 그 후로 10년 간 아름다운가게는 시민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내며, 2013년 현재 전국에 110여개의 매장을 개점하였고 최근에는 미국 LA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매장을 열었다.

아름다운가게가 이처럼 급격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가게가 스스로 노력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시민들이 직접 관심을 갖고 참여한 것이 아름다운가게 성장의 더 큰 이유이다. 아름다운가게는 그저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여러 가지 의식들을 시민들이 펼쳐낼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낸 역할을 했을 뿐이다.

급격한 산업화로 한국사회는 늘 ‘새 것’에 대한 동경이 강했고, ‘남이 쓰던 것’이나 ‘헌 것’은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했다. 서구 국가에서는 ‘앤티크(antique)’라고 하여 오래된 물건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벼룩시장이 관광지로 각광받을 만큼 곳곳에서 열리는 것과 달리 한국에는 그러한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쓰레기는 늘어나고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도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문화가 만연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아름다운가게가 처음 문을 열 당시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받았던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 매장

하지만 개점 당일의 모습처럼, 어느 샌가 시민들의 의식은 많이 변화하여 보다 보편적인 합리주의, 즉 헌 것이라도 가격이 적당하고 물건이 깨끗하다면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름다운가게는 단지 이러한 의식을 펼쳐낼 수 있도록 기존의 중고 매장이 가지고 있던 어둡고 낙후한 이미지를 탈피해 깨끗하게 내부 인테리어를 정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매장을 개설했을 뿐이다. 그곳을 이용하고 그 안에서 재사용의 문화를 만들어간 것들은 온전히 시민들의 역할이었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의식이 아름다운가게에서 표출되었던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부나 기증이라고 하면 자산가들이나 하는 특별하고 어려운 일로 여겨졌던 문화 역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내 삶의 질이 나아지면서 이웃을 돌아보고 돕고자 하는 의식들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활 속 나눔실천’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며 누구나 쉽고 일상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장을 마련했다. 장롱 정리를 하며 깨끗하지만 오랫동안 입지 않은 옷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고민을 기증으로 연결한 고리가 바로 아름다운가게였던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나눔활동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된 셈이다.

아름다운 가게 자원활동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변화한 사회문화는 바로 ‘자원봉사’이다. 아름다운가게에는 전국적으로 천여 명의 자원활동가가 활동하고 있을 만큼 자원봉사는 아름다운가게를 움직이는 중요한 힘이다. 전국의 각 매장에는 아름다운가게 직원 1명과 평균 40~50명의 자원활동가가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몇몇 매장은 직원 없이 자원활동가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참여 또한 적극적이다. 특히 아름다운가게는 매장 운영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각 매장이 위치한 지역 내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대상 선정 시 자원활동가들이 대상자들의 사정을 살피는데 참여함으로써 직접 나눔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순히 시간을 쪼개 노동력을 제공하고 남을 위해 베푸는 데 그치는 자원봉사가 아닌, 지역 전반의 사정과 이웃들을 살피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름다운가게의 가장 큰 정신은 바로 ‘그물코 정신’이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보면 씨실과 날실이 만나 엮이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의 이름이 ‘그물코’이다. 작은 매듭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그물코가 손상되면 그물 전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물코는 작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서로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이다. ‘그물코 정신’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물코로 여기고, 모두가 함께 온전히 공존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름다운가게는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또한 함께 만들어간 시민들의 문화 역시 다양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세상은 ‘그물코 정신’으로 서로가 어울려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아름다운가게와 함께한 시민들의 의식 변화는 긍정적이다. 오랫동안 건강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원을 다시 쓰고, 일상 속의 나눔 실천과 자원봉사 참여로 이웃과 함께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더 멀다. 아름다운가게가 설립될 당시 많은 도움을 준 영국의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옥스팜의 현재를 중년의 어른에 비유한다면, 아름다운가게는 아직 어린 10대 청소년이다. 그만큼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한국 사회에 숨어 있던 긍정적인 의식들이 하나하나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2002년 아름다운가게가 처음 문을 열 때 받았던 우려와 걱정의 시선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했듯이, 아름다운가게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나눔의 문화를 발견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